제 1 장 아마추어무선
1-1 아마추어무선(Amateur Radio, Ham Radio, HAM)의 정의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에서 제정된 「국제전기통신협약 부속 전파규칙」(Radio Regulations; RR) 및 우리나라 전파법 시행령 제8조에서 아마추어무선 업무의 정의를 「금전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무선 기술의 흥미에 의하여 행하는 자기 훈련 통신과 기술적 연구의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1-2 아마추어무선과 햄(HAM)
아마추어무선을 「Amateur Radio」, 「Ham Radio」 또는 「햄(HAM)」이라고 하며, 아마추어무선을 통하여 무선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무선사도 일명 「햄(HAM)」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추어무선이란 과학적인 취미 활동이다. 그래서 일정한 시험 절차를 거쳐 국가로부터 자격증을 획득한 개인 또는 단체가 적법한 기준의 무선설비를 갖추어 놓고, 같은 취미를 가진 세계인들과 전신(Morse, 모오스) 혹은 음성 등을 통하여 자유롭게 통신을 함으로써, 실험·연구·개척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래서 무선통신이나 무선기술에 흥미를 가진 「햄(HAM)」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자기 집의 무선실(Shack) 또는 차량 등에 무선기기와 안테나를 설치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세계에 있는 같은 취미(실험 정신)를 가진 동호인과 직접 무선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기술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전파를 통한 우정을 두텁게 하는 국제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이 「아마추어무선」을 일컬어 “취미중의 왕(Hobby’s King)” 또는 “왕의 취미(King’s Hobby)”라고 하며, 다른 어떤 취미도 따를 수 없는 무한한 매력이 햄의 세계에는 존재하고 있으며,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전파를 통하여 즐거운 햄 생활을 같이 나누고자 하고 있다.
사용 언어는 주로 영어가 공통 언어로 쓰이고 있지만, 대상 국가에 따라 그 나랏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국가 이익에 위배되는 것, 영리적인 것, 어느 특정 종교를 화제로 삼는 것,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 등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여 교신을 할 수 있다.
우리들 아마추어무선사, 즉 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하여 동서로는 아프리카에서 미주 지역까지, 남북으로는 남극에서 북극까지, 학생, 직장인, 주부,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릴 것 없이 이들 모두가 민간 교류의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교신을 통하여 친교를 맺게 됨으로써 십년지기(十年知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전파를 통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또한 각기 고유의 자연과 풍토,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고, 우호를 다짐하며 무엇보다도 천재지변과 같은 위급한 현장에서 최후의 통신 수단으로 공공을 위한 영원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HAM, 그것은 매력 있고 신비한 세계이며, 현존하는 무한의 세계이다.
모든 아마추어무선사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하여 서로의 우정을 나누고, 무선 기술에 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으며,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시에는 스스로의 기술과 장비로써 위급함을 알리고, 이를 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자연과 풍속 등을 자랑하고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체르노빌」의 악몽을 맨 처음 전세계에 알린 것도 HAM이었으며, 88년도 서울 올림픽 때 국외적인 홍보 활동, 성수대교 붕괴, 대구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에서 각자의 통신 장비로 재난 구조 활동을 하였으며, 햄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HAM이 제일 많은 나라는 일본으로서 약 300만명의 자격증 소지자와 53만 여국의 무선국이 있으며, 불과 한 둘 혹은 수명의 HAM이 있는 나라도 있는데,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가 이것을 즐기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는 약 18만 여명의 아마추어무선사 자격증을 소지한 무선동호인이 있으며, 그 중 약 5만의 아마추어무선국이 활동하고 있다.
1-3 아마추어무선의 역사
1.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
이태리 태생의 「마르코니」는 「리보르노 공대」를 졸업, 1894년 「H. R. Hertz」가 사망하자 헤르츠파의 응용에 착안하여, 부친 집에서 무선전신의 실험을 시작하였다. 1896년에는 무선전신에 관한 영국 특허를 취득, 런던 체신청에서 최초의 공개실험에 성공하였으며, 1897년 런던에서 무선전신회사를 창립하고, 도버해협에서 영국~프랑스의 통신을 실현시켰다.
그 후 대서양을 사이에 둔 송·수신은 1901년 12월 12일 「콘월주(州) 폴듀」와 「뉴펀들란드」의 「세인트 존즈」 사이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무선전신은 해저 전신 사업계로부터 심한 저항을 받았으나 대(對) 선박 또는 선박 대 선박통신의 독무대가 되었다.
마르코니는 그 밖에도 단일 안테나에 의한 동조식 및 다중 전신동조의 방식(1901), 자기 검파기(1902), 수평지향성 안테나(1905) 등을 발명하였으며, 그 후로는 그의 회사에 「J. A. 플레밍」을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들을 고문으로 맞아들여 통신거리의 연장, 동조(同調)의 개선 및 공전(空電) 혼신의 제거에 주력하였다.
1909년 「K. F. 브라운」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또한 1919년에는 파리 평화회의의 이태리 전권 대표가 되었다.
2. 무선통신의 발명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통신이 발명되자, 전선 없이 통신을 할 수 있는 이 무선통신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전기나 통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무선통신의 실험을 순순한 개인적인 흥미로 손대기 시작한 것이 아마추어무선의 시초였다.
G2HA라는 무선국을 운용하는 영국의 「맥슨」씨는 1899년부터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였다고 하니, 결국 아마추어무선의 시조는 마르코니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은 이태리에서 영국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퍼지기 시작하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선통신이란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별로 이용되지 못하였고 그저 아마추어들의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든 상업무선 통신보다 앞서서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의 초기에는 그 호출부호도 제멋대로 부여하였으며, 또한 이들을 규제하는 법규도 없었으므로 한가한 시기였다.
이런 식으로 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좀 더 능률적인 통신이 가능하도록 열심히 연구를 거듭한 햄들과 학자들의 힘으로 무선통신은 차차 실용성을 띠게 되었고 상업국이 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공관도 없이 수 kW의 거대한 발전기를 돌려가며 불꽃방전을 시켜 통신을 하던 초기의 무선통신에는 파장이 수백 미터 내지 수천 미터나 되는 장파를 쓰고 있었다.
당시의 이론으로는 단파란 겨우 옆집정도나 통화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단파라야 원거리 통신이 된다는 오늘날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론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장파를 사용하면서 무선국의 수가 하나 둘씩 늘어가자 무선국 상호간의 혼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시설도 원시적이었으므로 이와 같은 혼신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그래서 무법의 전파를 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3. 세계 최초의 전파법
1912년 무선통신이 가장 활발하였던 미국은 세계 최초의 전파법을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아마추어무선사들은 파장 200m 이하의 단파대로 쫓겨나고 말았으나,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단파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단파대에서 미국 햄들의 피땀어린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단파대를 이용한 통신의 통달거리는 곳곳에서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4.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ARRL; American Radio Relay League)의 탄생
1914년 수천 명에 이르렀던 미국의 햄들은 고(故) 「맥심」씨의 제창으로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인 ARRL을 조직하고 조직적인 실험을 시작하였으나, 1917년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아마추어무선국은 폐국 명령을 받아 아마추어무선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다. 당시 약 6천명에 이르렀던 ARRL의 회원 중 약 4천 여명이 무선통신의 경험을 살려 군대에 동원되었고,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햄들이 군에 동원되었으며, 따라서 아마추어무선 활동은 일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19년 세계대전이 끝나자 군대에서 더욱 더 기술을 연마한 햄들은 전쟁 후에 방출된 많은 무선통신기의 재료들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5. 단파대의 대서양 횡단 통신
1921년 12월 ARRL에서는 전파의 대서양 횡단 통신을 실험하기 위하여, 회원 중 가장 우수한 햄인 2ZE에게 그 당시로서는 가장 고성능인 수신기를 주어 유럽으로 파견하고 미국 햄들의 전파를 수신하게 하였다. 그 결과 약 30국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 있었으며, 이듬해인 1922년에는 300여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가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프랑스와 영국 햄의 신호를 수신하여 일방향 통신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목표는 완전한 교신이었지만 그 당시의 기계나 기술로써는 한계가 있었다.
1923년 11월 7일, 드디어 미국의 1MO(W9UZ)와 1XAM(K6BJ; 1964. 11. 작고)은 프랑스의 8AB2)와 파장 20m로 교신하는데 성공, 단파대에서 대서양 횡단 통신을 하여 당시의 무선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오늘과 같은 단파 만능시대의 막을 올리게 했던 것이다.
6. 전리층의 발견
이와 같이 햄들의 손으로 막을 올린 단파통신은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오히려 파장이 짧으면 짧을수록 원거리통신이 잘 된다는 결과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드디어 「케네리」와 「헤비사이드」에 의하여 「케네리-헤비사이드층」이라고 부르는 전리층(이온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파통신에 대한 이론도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소전력으로 원거리통신이 잘 되는 단파대로 많은 상업국들이 옮겨오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순전히 햄들의 손으로 개척된 단파대가 이제는 무선통신의 대명사가 되어 「무선통신」하면 「단파」라고 상식화되고 말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햄들이, 이론을 제쳐놓고 서로 도와 가며 실험으로 이룩해 놓은 빛나는 기록인 것이었다.
7. 국제아마추어무선연합(International Amateur Radio Union; IARU)의 탄생
이러한 단파대의 성공으로 원거리교신이 쉽게 되자, 전 세계의 햄들의 수는 부쩍 늘어났고, 드디어 1925년에는 그 때까지 각 나라별로 조직되었던 아마추어무선 단체의 통합체인 「국제 아마추어무선연합」인 IARU가 조직되어, 초대 회장에는 ARRL의 회장이었던 W1AW(맥심)씨가 겸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파(傳播)되던 아마추어무선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세계 각국은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말았으며, 대부분의 햄들은 또 다시 군으로 연구소로 불려갔다. 그리하여 많은 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그들이 평소에 연마한 기술을 봉사하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Silent Key(햄의 사망)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의 아마추어무선활동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패전국의 재개는 약간 늦어져서 1948년에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 그리고 1951년에 일본이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허가함으로써 패전국의 아마추어무선 개방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전승국이었던 자유중국은 중국과의 싸움 때문에 1964년에 비로소 한 개의 무선국이 허가되었다.
1-4 햄(HAM)이라는 용어의 유래
HAM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서투른 배우’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햄의 지방(fat)을 화장을 하는 메이크업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서투른 배우를 ‘hamfatter’라고 부르다가 ‘ham’으로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되어 아마추어무선사도 직업적인 무선사가 아닌 서투른, 초보단계의 무선사이므로 그들을 호칭하기 위하여 서투른 배우의 뜻이 있는 햄(HA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설(說)이 있으며, 또 다른 설로서는, 1908년 미국의 하버드대학 단체무선국의 오퍼레이터(Operator)들이 운용한 무선국의 호출부호가 HAM이었으므로 그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하버드대학 단체무선국의 운용자인 「ELBERT. S. HYMAN」, 「BOB ALMAY」, 「PEGGY MURRAY」라는 3명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그들의 무선국을 「Hyman Almay Murray」라고 하였으나, CW교신에서 이러한 긴 이름으로는 교신에 어려움이 많아, 그 이름 중 2글자만으로 「HY-AL-MU」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멕시코 국적의 선박 중에 「HYALMO」라는 이름을 가진 배가 있어 가끔 교신 중에 혼돈이 되었으므로, 드디어 1909년에 그들 이름의 첫 글자만으로 HAM이라는 무선국 이름을 작명하여 사용하게 된 것에서 유래되어 오늘의 햄(HAM)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하버드대학 단체국의 이름인 HAM이 오늘날 아마추어무선을 지칭하는 용어로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다소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1900년대 초기에는 전파의 사용을 규제하는 법규가 없어, 아마추어무선사들은 그들의 호출부호와 사용 주파수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이 연구·개발한 기술로써 상업국보다 강한 전파를 송출하게 되니, 아마추어무선국에 의한 상업 방송에 전파방해 등의 문제가 대두되어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규제하려는 ‘무선활동 규제 법안’이 미국 의회에 제출되었다.
이 때 하버드 대학 단체무선국의 멤버인 ELBERT. S. HYMAN은 의회에 제출된 문제의 ‘무선활동 규제 법안’을 주제로 한 졸업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HYMAN은 지도교수의 권유로 그의 논문의 사본을 그 법안 심의위원 중의 한 사람인 DAVID. L. WALSH위원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 졸업논문을 받아 본 WALSH 상원의원은 HYMAN에게 의회의 법안 심의 위원회에 출석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요청하였으며, HYMAN은 의회에 출석하여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설명과 아울러,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아마추어무선사들이 감당해야할 제반 규제와 면허세 등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아마추어무선국의 활동이 위축되어 드디어는 폐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그 후 이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을 때 의원들은 HAM이라고 하는 하버드 대학의 단체무선국과 아마추어무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상업 방송국들의 위협으로부터 아마추어무선국을 보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의 아마추어 단체무선국 HAM이 아마추어무선국에 대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그 이후 미국인들은 이 「HAM」이라는 하버드대학의 단체 무선국을 아마추어무선국과 관련짓게 됨으로써 무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마추어무선과 HAM을 동일하게 생각하게 되어, 아마추어무선을 HAM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햄의 어원이야 어떻든, 전 세계의 HAM들은 인류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파를 매개체로 하고 있으며, 더구나 HAM들이 쓰는 주파수대는 단파이기 때문에 소출력의 전파로도 지구의 반대편까지 교신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햄들이 전파를 통하여 서로 만나게 되면 국경, 나이, 직업 등 모든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순수한 친구로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세계의 평화와 국제적인 우정, 그리고 무선 통신의 끝없는 개척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국경 없는 세계인의 모임인 햄의 세계는 오늘도 여러분의 참여를 고대하고 있다.
1-5 햄(HAM)이 되면 이런 점이 좋다.
1. 자신의 관심 여하에 따라서 여러 방면으로 전자통신공학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으며,
2. 교신을 통하여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다방면의 친구와 사귀게 되어, 내성적인 사람도 많은 상대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하여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따라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3. 궁금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신선하고 잔잔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4. 사무소나 지부, 연맹 등에서의 봉사를 통하여 봉사 정신을 배우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5. 주부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전파를 통하여 세계를 누비는 환상적인 취미생활이며, 때로는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전파의 방향을 탐지하는 ARDF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6. 이 밖에도 외국어에 관심을 갖게되어 외국어 실력이 향상된다든지, 고령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어도 안방에서 무선장비와 더불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취미생활인 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취미이다.
1-6 아마추어 무선을 즐기는 방법
아마추어무선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드는 일, 실험하는 일, 말하는 것, 듣는 것, 경기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그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Local Ragchew
가까이 있는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이런 저런 생활 이야기나 취미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을 말하며, 아마추어무선의 선배들과 만난다면 기술적인 이야기나 아마추어무선의 옛날 이야기도 흥미 있는 화제가 될 수 있다.(☞ P.15 아마추어무선사의 교신 중 금기사항 준수)
2 국내 또는 근거리 교신(Local QSO)
지상파로는 교신이 되지 않는 국내의 멀리 떨어져 있는 무선국과는 전리층의 반사를 이용한 교신이 가능하며,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전국 방방곡곡과의 교신이 가능하다.
3 원거리(DX: Distance) 교신
일반적으로 DX란 원거리와의 교신을 의미하지만, 해외의 무선국과의 교신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언어(외국어) 문제로 고민할 수도 있으나 아마추어무선사들간에 사용하는 세계 공통의 간단한 표현만으로도 외국과의 교신을 즐길 수 있다.
4 어워드 헌팅(AWARD HUNTING)
일반적으로 교신을 하고 나면 QSL 카드를 주고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아마추어무선사로서의 경륜이 쌓이게 되면 상당수의 QSL 카드가 모이게 되는데, 이 카드로써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AWARD(상장)를 신청하여 받을 수 있다. 목표를 가지고 아마추어무선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5 컨테스트(CONTEST)
정해진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무선국과 교신하는 것을 말하는데, 전파를 이용한 경기대회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교신한 무선국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 또는 국가 등의 숫자에 따라 득점이 증가하는 등의 여러 가지 규정이 있어, 교신 기술의 향상을 도모하는 의미도 있다.
6 리피터(REPEATER) 교신
리피터(중계기)라고 하는 자동 중계국이 전국에 고루 개설되어 있어, 휴대용 무선기기 등 저출력의 송수신기로도 어느 정도의 장거리 교신을 즐길 수 있다. 정해진 동일 주파수를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므로 리피터를 이용한 교신은 가능한 한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7 ARDF(Amateur Radio Direction Finding)
전파 발신기를 산이나 들판의 숲속에 숨겨두고 수신기를 이용하여 그 발신기를 찾아내는 옥외 경기이다. 최근에는 국제적인 규칙(rule)을 정하여, 자동 발신기 5개를 숨겨두고 차례로 이것을 찾아내는 경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국제 경기로 발전하고 있다.
8 특수 통신(特殊 通信)
아마추어무선용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통신이나 라디오 텔레타이프(RTTY), 정지화상(SSTV), 아마추어 텔레비전(ATV), Data 통신(packet, AMTOR 등), 무선 팩시밀리 (MINI FAX) 등의 화상통신 등이 있다. 마이크를 이용한 무선전화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응용한 통신도 즐길 수 있다.
9 이동 운용(移動運用; Mobile Operation)
자동차, 선박, 항공기, 우주선 등에 무선기기를 장착하여 임시로 이동 중에 운용하는 이동무선국(mobile station)을 비롯하여, 휴대용 무선기기를 이용하여 야산이나 해변에 안테나를 가설하거나, 거리를 이동 중에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1-1) 위성을 통한 아마추어무선 교신 (그림 1-2) 이동운용(Mobile Operation)
